
여기는 우리를 안내해준 뱃사공의 집 거실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요.
우리는 소박한, 그러나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 앞에 앉아 한나절의 피로를 씻어보냅니다.
우선 메인으로는 푸짐한 밥 한 그릇씩, 그리고 이곳에서 잡힌 생선구이, 이곳에서 경작한
신선한 야채볶음 등 등....
나와 중국애 이치는 비교적 익숙한 동양식이어서 별 거부감이 없었지만, 네델란드와 스위스 출신인
두 여자애들은 쉽게 숟가락이 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그래도 메너 하면 또 한 메너하는 유럽애들
아닌가요? 밥 한그릇 다 비우고, 생선도 말끔이 먹어치우고, 후식으로 나온 토마토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호수면에서 부서지는 양광, 살랑이는 산들바람,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네들과의 소박한 오찬...
가벼운 피로가 밀려오는 시간대, 내 소중한 여인네들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히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는 가장 편안하면서, 결코 놓고 싶지 않은
행복한 나른한 오후가 시작된 것이지요.
다음 일정은 이곳 원주민 아주머니들이 노를 젓는 쪽배를 타고
이웃집 마실을 도는 시간입니다.
우리말 "마실" 이웃집 나들이, 참 정겹고 다감하면서도 빼어난 우리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어권에서는 visit 또는 step in.....참 멋이라고는 없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네요.
난 솔직히 맥주는 맛이 지려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델란드 애는 반대로 맥주를 너무 좋아해서 마치 물 마시듯 합니다.
자기 것을 이내 비우고 그대로 남아있는 내 것을 바라보는 폼이 마치 치와와 눈빛을 닮아,
나는 내 것을 슬며시 그녀 앞으로 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너무나 행복해 하는 그녀^^
나그네에게는 비교적 여행운이 따른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지요.
물론 자기 암시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런 믿음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10여년이 넘는 여행 중 단 한 번의 불상사도 없었습니다.
이번 미얀마 여행 역시 이처럼 좋은 동행을 만나 외롭지 않게, 또 마음 따뜻하게 추억에 남을 여행을
만들 수 있었지요. 이 친구들과는 지금도 페북과 이멜을 통해서 계속 연락하고 지냅니다.
만약에 Covid-19라는 전 지구적 불상사가 없었다면, 이 애들과 함께 스위스와 네델란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터인데...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만 있고,
또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 지구 어디에서 또 만나 담소를 나눌 날도 오겠지요.

식사 후 잠시의 휴식을 뒤로 하고 우리는 또 오후 마실을 나섭니다.
이번에는 동력선 아니라, 우리 뱃사공의 어머님과 이웃 아주머니가 손수 노를 젓는 쪽배,
그래서 네 사람이 한꺼번에 타지 못하고 배 한 척에 두명씩, 이렇게 두개 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천천히 동네 골목길 나들이를 나섰지요.
나중에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게 쾌속선 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슬로우 슬로우 느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바로 이 쪽배 입니다.
아주머니의 생김새는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음씨 너그러운 수더분한 아주머니상...
미얀마인들의 특징이기도 한 한 없이 선량해 보이는 그런 아주머니였습니다.
자아~떠나자, 이웃집으로 마실을~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디메뇨.....
중국 꾸냥 이치와 알프스 처자 니콜이 잔잔한 호수면을
노저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정태춘이 부르는
떠나가는 배 노랫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나 잠시 같은 길을 걷게된
내 소중한 인연들.....이곳 인리호 여정을 끝으로 나는 만달레이로.
그리고 알프스 처자 니콜은 내가 이미 거쳐온 버갠으로.....
각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동선이 같다면 아주 오랫동안 함께 여행하고픈 참 참한 아가씨들인데,
결국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떠올렸나 봅니다.




그리고 여기 이배의 앞머리가 보이시죠?
이게 나와 네델란드 아가씨가 탄 배입니다.









내 경험상 집 떠난지 한 달 정도가 되면 향수병 비슷한 현상이 밀려옵니다.
그냥 외롭고, 집에 두고 온 딸들 생각도 나고.....
해서 나그네에게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네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아주 먼 이국에서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그만 정이 들고 사랑 비슷한 감정에 빠져 버린
나그네는 이치와 니콜을 불러 봅니다. 애들 역시 인간에 대한 호의로 가득한 애들이어서
만면에 부서질 듯한 빛나는 미소를 담아 나를 바라봐 줍니다.
그래서 난 그애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날리면서 우리말로 "사랑해"라고 외처봅니다
물론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애들이지만, "What" ? 하고 나서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말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는지 "Me too"로 응답을 해줍니다.
이 세상 참 살만 하지요. 우리가 찾기만 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행복 아닌가 합니다.

연신 "wonderful, amazing"을 웨치는 알프스 처자 니콜과
"很美, 好漂亮" 연발하는 중국 꾸냥 이치.
물론 중국에도 이처럼 맑고 아름다운 호수는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우자이고우의 창하이호....
물론 알프스자락 만년설이 녹아내려 빚어낸 레만호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지요.
그래서 니콜에게, "니네 레만호도 이만큼 예쁘냐?"물었더니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또 파아란 포도송이가 영글때면 포도밭이 호수면에
떠올라 장관을 이루기는 하지만, 이곳만큼 정겹고 예쁘지는 않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역시 이곳 미얀마 인리호가 여러면에서 최고인 게지요^^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어느새 네 명이 되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맑은 물이 빚어낸 조화.....
이날 밤 난 이 사진을 비롯해 내가 찍어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예쁜 사진을 전부 이애들 헨폰으로
전송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는....

이날 내 최고의 작품, 이름하여 호수에 잠긴 두 소녀
물론 이때만 하더라도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줄은 짐작도 못했겠지요.
밤이 되어 우리는 서로 찍은 사진들을 함께 보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아기자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때 이 사진을 발견한 이치와 니콜은 거의 할 말을 잊은 듯 너무 좋아라 했지요.
물론 호텔 로비에서 우리랑 함께 놀던 다른 국적의 여행객들도
사진이 너무 예쁘다면서 부러움과 찬사를 함께 보냈습니다.
사진빨은 역시 알프스 소녀 니콜이 더 뛰어나지요?
그래서 내가 니콜을 보면서 유전자가 다르다고 했던 것입니다.











애들아.....
하루에 몇 번을 봐도 질리지도 않고 너희들이 좋은 걸 어떡해야 하나?
아마도 이 애들의 저 상큼한 미소를, 갓 씻어낸 상추보다 더 상큼한 저 미소를 떠올리면,
아마도 이 피곤한 세상에서 한달 이상도 더 버틸 수 있지 않을런지요....


오지에 가면,
소년 소녀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애들이 두셋씩 딸린 것을 보고 놀랜 경험이 자주 있습니다.
내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만났던 쟈오쟈오 역시 16살이었는데, 그 이듬해 찾아갔더니 항항이라는
애가 생겼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현재는 파오파오까지 두 명인데 모두 소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 인레호 뱃사공 청년 역시 이처럼 애가 둘이나 있습니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열심히 애나 만들어서 잘 기르는게 어쩌면 이곳 인따족의 번영에 봉사하는 길일지도...ㅎㅎ
만남이 있으면 이별은 당연하다지요.
이날 하루 잠시 만났다가, 살아 생전에 다시 만난다는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웃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으로 흐르는 보슬비 같은 슬픔을 다독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해봅니다. 내가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다시 찾아와 이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이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여기는 수상마을이 아니라 인레호 상변,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작은 개울가입니다.
마을 아가씨들이 빨래도 하고, 멱도 감으면서 더위와 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좋다는데, 지나가는 나그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저 천진함....
우리가 좀 먹고 살만하면서부터 우리 주변에서는 사라져 버린 그리운 옛 정경입니다.
이 나그네가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만 해도 시골 냇가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던 풍경이어서,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동심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는 "애들아, 초상권 침해인데 너무 미안해"하면서도 마음껏
이 귀한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나그네는 참 복도 많지요???


멱감는 소녀들이 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소띠끼 하는 소년이 있는....
한 폭의 전원풍경 아닌가요?
멱 감던 소녀가 고개를 돌려 새침하게 나그네를 바라봅니다.
난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밍글라바를 외칩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너무 예뻐 니들이" 그런데 그애들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요.
이 사진들은 두고 두고 나에게 아주 소중한 그림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내 어린 시절에 나에게 카메라가 있었다면 물론 이런 정감어린 사진들이 남아있겠지만,
당시에는 먹고 살기에도 버거운 시절이었는데, 어찌 카메라까지?
그래서 이제라도 이런 사진을 담을 수 있었던 이날이 내게는 너무나 행운이었다는....






어때요?
인레호 인따족이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도 이 싯점으로 돌아가 회상하면 마음은 온통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니콜과 이치 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고...
인레호에서 만났던 그 상큼했던 내 소녀들 때문이기도 하고.....
소띠끼 하는 소년들과 우리 뱃사공 청년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은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
모두가 사랑이에요
모두가 이별이에요
따뜻한 공간과도 이별
수많은 시간과도 이별이지요
이별이지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구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마음이 넓어지고 예뻐질 것 같아요
이것이 행복이란 걸 난 알아요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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