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아주 특별한 내 추억의 창고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필름 속 세상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소중한 추억들을 한가득 간직하고 있을 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숱한 어려움들을 만나게 되는데, 좌절하지 않고 버틸수 있게 해주는 힘은
우리의 보물창고에 보존되어 있는 좋았던 기억들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나그네도 살아오면서 적지않은 만남과 이별, 성취와 실패 등을 겪었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흔적들은
지금도 어딘가에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포스팅하고 있는 이 사진들 역시, 내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최근에 창고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내 추억의 파편들 입니다.
이제는 좀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자고 창고를 뒤지다가 30년도 더 된 네가필름 한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필름스케너를 주문했고, 그것이 도착하자 스캔을 시작했는데.....필름 현상을 해본 분들은
알 것입니다. 암실에서 현상액 베젤에 네거티브 필름을 넣고 기다리면 아주 천천히 필름에 담겨있던
영상들이 현상액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 신비로왔던 순간들을....
내가 30년 이상 잊고 지냈다가 새로이 끄집어낸 내 삶의 괘적이자 아름다왔던 추억의 파편들을 이제
내 추억의 창고에서 방출하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가 1990년대 가을 대운동회...

지금 어른들로서 1990년대를 살아왔던 분들이라면 이런 공굴리기 광경에 익숙하겠지요?
지금도 이런 운동회가 남아있나 모르겠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전교 학생수가 약 400명 이상은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학생을 청백 양팀으로 나눠 이런 성대한 운동회 개최가 가능했겠지요.
현재는 거의 소멸해가는 미니학교가 되어, 학생수도 전교생이라 해봐야 30명 정도...
여기는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부근 해남군 북일면 북일초등학교 입니다.
때는 1992년 아니면 1993년 경.


이 꼬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당시에는 애가 누구집 아들인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 아이가 현재는 이런 아이를 두셋거느린 30대 후반의 성인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공을 굴리고 있는 이 아주머니는 제가 잘 아는 분입니다.
현재도 역시 예전 같은 집에서 같은 생업에 종사하고 계십니다.
다음에 내가 고향에 내려갈 기회가 되면 이 사진들을 모아서 전해드려야 겠습니다.


이 꼬마의 이름은 나대로, 현재 해남에서 택배 자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건실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뒤에 있는 새댁은 대로의 엄마는 아니고, 같은 마을 총각에게 시집온 새댁이 바쁜 엄마 대신 참석했습니다.
내가 잠시 고향마을에 머물 무렵 이 새댁이 내집 근처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참하고 상냥해서 나그네와도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서 식후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한다거나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운동회나 소풍 때 참석을 같이 해서 애들을
돌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꽤 오랫동안 내가 고향을 떠나 있는 사이, 전에 살던 남편과는 이혼을 했고, 적지 않은 풍상을 겪었다는
소문을 이웃으로 들었을 뿐 다시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워낙이 심성이 곱고 예뻤던 분이라 하느님의 가호 아래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진실이 엄마 홧팅!!!

메롱~하고 있는 요녀석 이름은 이인종.....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이 식인종이라고 놀려도 항상 싱글 벙글 웃던, 참 착한 아이입니다.
물론 나와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많은 인연이 있구요.
인종아....놀러와 삼촌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이 녀석 이름은 공XX,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 보물창고를 개봉하면서
새로이 찾아낸 내 소중한 보물, 내가 고향마을에 잠시 내려가 있을 때 많이 예뻐했던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운이 따르지 않은 애들이 종 종 있지요. 애가 바로 그런 케이스인데,
엄마 아빠가 일찍 이혼을 했고, 엄마가 집을 나가 할 수 없이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
그래도 성격이 너무 밝아서 전혀 그런 낌새를 내비치지 않았던 당찬 아이,
무언가 결핍이 있으면 더욱 애착이 가는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내가 고향에 내려오면 임시로 머물던 집이 학교가 끝나 애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중간지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방과후 옹기종기 모여 하교하다가 내 집 앞에 이르면, 당연한 일과처럼 "삼촌"을 찾습니다.
내가 집에 있는 날이면 들어와서 학교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또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컴퓨터도 하고 놀다가 저녁식사를 해야할 시간에 맞춰 집으로 귀가하고는 했지요.
언젠가는 한 아주머니의 갑작스런 방문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산에 살고 있는데, 딸 xx가 삼촌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정말로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딸도 만날 겸해서
일부러 찾아왔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져주지 못한 관심과 애정으로 애들 돌봐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어서 조그만한 집이라도 한칸 마련하면 애들 데려가겠다는 소망도...
그런데 그로부터 한 3년 지나서 이 애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정말로 부산으로 진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후로는 이 아이와 연락이 끊어져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네요.
물론 시골에 계신 할머니도 지금은 타계하시고 안 계셔서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애야...혹시라도 우연히 이 사진을 보게되면 삼촌에게 연락해^^
삼촌은 지금 해남에 내려와서 예전처럼 자전거 타고, 테니스도 치고 잘 지내고 있단다.

나와는 사돈지간인 정종채의 아이들....
당시 엄마는 면소재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운동회는 참석하지 못하고,
그래서 나이가 위인 오빠가 어린 동생을 잘도 보살피고 있습니다.
저 꼬마가 자라서 공무원이 됐고, 현재는 해남군청 민원실에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지요.
소년 소녀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애들의 엄마 아빠가 되고....
그래서 우리는 떠밀려 할아버지가 되고....뭐 이런 게 인생이니까요^^


요녀석 이름은 박민국, 내 친구 영남이의 딸입니다.
이때가 초등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무렵....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앞 백군 여자애는 당시 6학년, 하교길에 반드시 내 집앞을 지나야 귀가할 수 있는 삼성마을에 사는 애입니다.
애랑 처음 만나게 된 것도 꽤나 일반 상식을 벗어난 경우인데...어느날 애들 하교길에 내 집으로 몇 명의 어린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삼촌, 저희들 이곳에서 조금 놀다가도 되요?"
이게 인연이 되어 그후 애들 하교길에는 의례히 참새 방앗간 속담처럼 우리집에 들려서 다음날 숙제를 미리 해놓고
그 다음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두~세시간 놀다가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나도 이 애들 하교시간에 맞춰 외출을 삼가고 애들을 기다리는 것이 어느덧 작은 행복이 되었었지요.
당시 우리 모두 궁핍했던 시절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애들은 늘 배가 고파했고, 나는 그런 애들을 위해서 라면을
상자로 주문해서 애들하교길에 끓여주곤 했는데, 당시 이 애가 유난히 좋아했떤 좋아했던 라면이 빙그레 "이 라면"이었습니다.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정말로 맛있어서 나도 아주 좋아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 당시에 컴퓨터는 윈도우 3.1에서 윈도우 95로 넘어가던 시절, 이 녀석들에게 윈도우 95 사용법을 가르처주기도 했고,
토요일 학교가 조금 일직 끝나는 때에는 애들을 데리고 정도리(완도 해변) 바닷가나 땅끝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지요.
나에게도 이 아이들에게도 참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 추억창고를 풀다보면 앞으로 종종 이 녀석들과 여행했던 해남 주변의 명소들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이 녀석은 내 친구의 딸입니다.
착하고 예쁘고 공부도 참 잘했던, 그래서 영재학교인 전남과학고를 거처 현재는 수학선생님으로
재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몇년 전에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는....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이녀석....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 하고있는 필름 스캔작업이 다 끝나면 한 명씩 찾아서 사진 데이터도 전해줄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현재 이 녀석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겠지요.
부디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삼촌이 곧 너를 만나러 갈께...

이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도 마치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가운데 이 아이도 방과후 내 학당에 매일 출석했던 내 소중한 아이들 중 한 명.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고 하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요.
그렇게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내 추억창고를 열어서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내 딸들...
민국이, 소영이, 인혜....
모두가 그리움이고, 모두가 사랑입니다..

경진아....
내 동생의 막내딸입니다.
지금은 해남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운동회의 마지막 이벤트인 전통혼례식의 재현
신랑과 신부로 분한 애들이 모두 나랑 아주 가깝게 지냈던 애들입니다.
지금은 모두 다 잘 성장해서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요.
물론 이 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각자가 서로 다른 가정을~ ㅎㅎ
이둘이 함께 가정을 이루었다면 정말로 초등학교 운동회가 맺어준 커플로서 한 편의 동화가 되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지요?





에고 귀여워라.....
자~다음에 개방할 창고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